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메인페이지 자료마당 사서가 권하는 책 - (어린이 추천도서) 구덩이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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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서가 권하는 책

  • 작성자한수풀도서관 관리자
  • 작성일2020-07-07
  • 조회수53

제목(어린이 추천도서) 구덩이



□ 서명: 구덩이

□ 저자: 다니카와 슌타로

□ 청구기호: 아833.8-다219구


  어느 일요일 아침, 히로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. 별다른 목적이나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, 그냥 아무 할 일이 없어서다.

  땅을 파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한마디씩 거든다. 뭐하냐고 묻는 엄마, 자기도 같이 파고 싶다는 여동생, 구덩이의 용도를 묻는 친구와 서두르지 말라는 맥락없는 충고를 하는 아빠까지. 아이는 별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구덩이를 판다.

  파다보니 깊게, 더 깊게 파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얼굴이 땀범벅이 된 아이에게 애벌레 한 마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. 아이는 뭔가 깨달은 듯이 파던 일을 멈추고 구덩이 안에 쪼그려 앉는다.

  할 일이 없어 시작한 시간 때우기용 유희나 취미조차 더 잘해야 하고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애벌레가 건넨 한 마디 인사는 처음의 마음을 환기시킨다. 구덩이를 파며 아래만 쳐다보던 아이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그 안에 앉아서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낀다. 히로에게 또 사람들이 와서 구덩이를 가지고 뭘 할꺼냐고 묻고, 뭘 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심지어 구덩이의 모양을 평가까지 하지만 히로는 또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다. 그러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본다.


  히로는 위를 올려다보았다. 구덩이 안에서 올려다본 하늘은, 여느 때보다 훨씬 파랗고 훨씬 높아 보였다. 그 하늘을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가로질러 날아갔다.

  히로는 일어서서 영차, 구덩이에서 올라왔다. 그러고 나서 구덩이를 들여다보았다.

  구덩이는 깊고 어두웠다......

‘  이건 내 구덩이야.’ 히로는 한 번 더 이렇게 생각했다. 그러고 나서 천천히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.



  어차피 다시 메울 구덩이를 왜 파는 거냐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냐고, 뭐 이런 심심한 이야기가 다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. 하지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는 완전히 무용한 시간 속에서 본 하늘과 나비의 잔상은 오래도록 히로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. 또 그 기억을 혼자만의 은밀한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서 내 구덩이를 흙으로 다시 덮어둔 것은 아닐까? 하고 히로의 마음을 짐작해 보게 된다.

  SNS에서 화분에 심은 식물에 물을 줄 때 화분의 흙에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구멍을 내주면 잘 자란다는 팁을 본 적이 있다. 흙이 너무 단단해지지 않게 바람이 통할 수 있는 숨구멍을 내주는 거라고 한다.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구덩이를 파기 전 땅의 모양과 마지막 페이지의 구덩이를 메운 후의 땅의 모습은 겉보기엔 똑같아 보인다. 하지만 화분의 숨구멍처럼 히로의 내면에도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구멍이 하나 생긴 건 아닐까? 그런 구멍이 아직은 어린 아이인 히로를 더 푸르게 자라게 하지 않을까?

 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간을 쪼개 사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용한 시간을 누려 본 사람의 마음 속 그림의 빛깔이 조금은 더 다채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. 『구덩이속의 단조로운 그림과 짧게 끊어지는 문장의 행간 속에서 그러한 다채로운 마음의 빛깔을 상상해 보시기를 권한다.



<한수풀도서관 강희진>